엄마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쓰시던 전기밥솥을 가져와

밥을 지을 때마다 엄마 생각하며 한 이년 잘 썼는데

자꾸만 김이 새고 밥이 고두밥이 되어서

진밥을 좋아하는 남편이 투정을 했다.

통에 균열도 생기고 수리가 안 될 것 같아

며칠을 고민하다가 할 수 없이 버리기로 했다.

밥솥을 들고 나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가슴이 먹먹하고 왜 그렇게 허전하던지...

 

엄마 전화번호도 여직 지우지 않고 그대로 두었는데

가끔씩 눌러보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했지만

한 번도 눌러 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엊그제 엄마번호에 모르는 사진이 올라왔다.

아마도 다른 사람에게 번호가 넘어 간 것 같았다.

그래서 번호를 지우고 말았다.

 

시골집도 팔려서

시골에 가도 들릴 곳이 없고

항상 꽃들이 피어나던 엄마의 꽃밭도

이젠 볼 수 없게 되었다

철마다 잊지않고 피어나던 동백이랑 목단도

더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아직도 내 마음에는 엄마의 모습이 생생한데

빨강대문을 밀고 들어서면 반갑게 맞아주실 것만 같은데

이 땅에서 엄마의 흔적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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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에 갔을 때 살아있는 싱싱한 꽃게를 사와서 무젓을 담갔다.

무젓을 담그며 엄마 생각이 났다.

꽃게 무젓은 풋마늘을 넣어야 맛있다 했는데

계절상 풋마늘은 구하기 어려워 통마늘을 편 썰어 넣었다.

식구들이 잘 먹는 걸 보니

엄마 손맛에 비슷하게 맞춰진 듯 하다.

엄마는 무젓을 담그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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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미안해요


살아생전에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 해드리고


따뜻하게 한번 안아드리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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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2(토)

 

 

 

아버지...

보고싶은 내 아버지...

 아버지 생각에 눈물이 났다.

살아생전에는

눈물 나도록 보고싶어 했던 기억이 없는데

왜 돌아가시고 나서야

간절한 그리움으로 눈물짓는가

 

 

 

 

 

25164

2012.04.05(목)

 

'아버지 운명하셨습니다'

동생의 문자를 받고

차라리 마음이 편안하였다.

 

아버지를 간병하다가 요양병원으로 모시고

난 서울로 올라왔다.

사람들이 아버지 안부를 물으면 눈물이 먼저 나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래서 사람들 만나는 것도 꺼려져서 집안에만 있었다.

삶의 의욕이 없는 사람처럼 무력감에 빠져서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 우울에서 벗어나고자 산을 찾았는데

그만 산길에서 아버지 돌아가신 소식을 들었다.

갑자기 머리가 멍하더니 눈물이 쏟아졌다.

그때 요양병원에서 환하게 웃으시던 아버지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 거렸다.

'얘야 울지말아라

난 편안한 곳에 잘 있단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눈물이 멈췄다.

그리고 마음의 평안을 얻어 무사히 하산할 수 있었다.

정신없이 달려간 장례식장에는 이미 많은 분들이 와계셨다.

그 분들의 고백을 통해 우리 아버지가

더 없이 자랑스럽고 훌륭한 분이란 걸 깨달았다.

 

수업료가 나올 때마다 아버지에게 빌려서 내셨다며

지금은 정년퇴임하신 먼 친척 아저씨

가까이 살지 않는데도 우리집 애경사는 빠지지 않고 형제분이 꼭 참석하신다.

 

집들이가 끝나고 1주일 후에 쇼파밑에서

아버지의 따뜻한 글귀가 담긴 봉투를 발견했다며 울먹이던 외사촌.

가끔씩 외삼촌 내외분과 엄마 아버지 모시고 맛있는 것도 사드리고

좋은 곳 구경도 시켜드리기도 했다.

 

"나 사람 만들어 주신 분인데..."

하며 울먹이시던 분

나와 나이 차가 있는 줄 알고 늘상 아저씨라 했는데

3살 연상이라 해서 이제부터는 오빠로 부르기로 한

자식 못지 않으신 분

묘자리도 정성스럽게 손수 만들어 하얀 백지 깔고

아버지를 편안하게 모시고

비석은 내 손으로 세워드려야 한다며

까만 돌에 대통령표창 받으신 글귀를 새겨 넣어 세워놓으셨다.

 

아버지께서 우리 큰딸과 동갑이라시며 고마움을 자주 말씀하시던 찻집 여주인

토요일마다 그 찻집에서 아버지 동창분들 모임이 있으신데

거동이 불편하시어 모임에 나가시지 못하면

꼭 차로 모시러와서 모임에 참석하게 하시고

끝나면 다시 모셔다 드리던 딸 역활을 대신 하셨던 분.

 

아버지 주위엔 이토록 고마운 분들이 많이 계셨다.

남에게 베푸는 걸 좋아하시고 폐 끼치는 걸 싫어하셨던

우리 아버지

때로는 자식에게까지 부담 주는 걸 싫어하셔서

서운하게 느껴지기도 했었는데 

아버지께서 맺어놓으신 좋은 인연

아버지는 가셨지만 우리도 잘 이어가야 겠다.

 

 

 

 

 

2012.03.26(월)

 

 

동생들이 내려와 퇴원수속을 하고

구급차가 도착하여

아버지를 태우고 요양병원으로 향했다.

구급차에 내가 함께 탔는데

아버지를 바라보면 자꾸 눈물이 나와 창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고향 들길을 지난다.

우리 아버지 자전거 타고 다니셨던 길인데...

해마다 농사 지으시어 자식들 쌀을 대주셨는데...

이제 저 논의 농사는 어찌 되는건가?

 

 요양병원에 도착했다.

군립이라더니

상당히 넓고 다양한 시설들이 되어있다.

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요양병원은 이 곳이 처음이며

전국에서 시설이 가장 좋은 곳이라 설명한다.

그래봐야 아버지에겐 별 소용없는 일이지만.

의사와 면담을 하고

아버지 검사가 몇가지 진행되고

폐렴 예방주사까지 맞았다.

그리고 이층 병실로 옮기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눈을 뜨시고 우리를 보시더니

활짝 웃으셨다.

순진한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미소로 웃으셨다.

그처럼 아름답게 웃으시는 모습은 처음이다.

"아! 미치겠네!

병원에서 진작 그랬으면 여기 안 오지!"

동생이 어쩔줄 몰라한다.

정말 不可思議하다.

아마도 자꾸만 마음 아파하는 우리를

위로하고 싶으셨던게 아니었을까...

'얘들아 난 편하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꼭 그리 말씀하시는 표정이셨다

 

 

 


2012.03.25(일)

 

 

두 눈을 감으신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노라니

자꾸만 눈물이 아른거린다.

마음을 추슬러 보려고 병실을 나왔다.

오후의 따뜻한 햇볕이 들이비치는 복도

휠체어에 노모를 태운 50대 중반의 남자가

작은 소리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복도 이쪽에서 저쪽 끝을 왔다 갔다 한다.

자장가로 들렸는지

피골이 상접한 주름진 노모의 얼굴이

참 편안해 보인다.

우리 아버지도 햇볕 한번 보기를 소원하셨는데

휠체어 조차 태울 수 없어

아주 작은 소원 조차 들어드릴 수가 없게 되었다.

 

 

********************

 

 

매트가 고른지

환자복이 겹치진 않았는지

베개는 바르게 놓였는지

마지막 잠자리를 손질하고

옆으로 눕히신 몸을 편안한 자세로 바르게 눕혀 드렸다.

"아버지 편안히 주무세요.

오늘이 아버지와 함께하는 마지막 밤이네요"

울지 않으려 했는데

여직 잘 참아왔는데

오늘은 참을 수가 없네요

내일이면 요양병원으로 가셔야 해요

아버지가 그토록 가시기 싫어하셨는데

깨어나지 않으시고 계속 주무시니

어쩔수 없이

어쩔수 없이

그리로 모시기로 했어요.

'어쩔수 없이'란 말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죄스러운지

마음이 아파 견딜 수가 없네요.

 

 

 

 


2012.03.24(토)

 

"아버지 아침 해가 밝았어요

이제 그만 일어나세요!

우리집에서 가장 부지런하셔서

아침이면 제일 먼저 일어나시던 분이

왜 이렇게 잠만 주무세요!

종일 잠만 주무시는 잠꾸러기가 되셨어요!"

 

"아버지 눈 좀 떠 보세요!

아침을 드셔야 하는데, 눈을 뜨고 드셔야죠!

눈을 뜨시고 저 좀 바라보세요.

제가 누구예요?

'우리 큰딸, 이쁜 우리 딸'

그러면서 용돈도 주셨잖았요

다시 한 번 말씀해보세요

'우리 큰 딸, 이쁜 우리 딸'

다시 듣고싶어요"

 

간밤에 저혈당 증세로 검은콩베지밀 하나를 드리고

오늘 아침엔 미음을 다 드리라 해서 600cc를 다 드렸다.

"아버지 많이 드시고 빨리 기운 내셔서 일어나세요!"

지금이라도 눈을 뜨시고 벌떡 일어나 앉으실 것만 같다.

도란도란 말씀도 나누실 것 같다.

"이제 아버지와 함께 할 시간이 이틀 밖에 안 남았어요.

왜 자꾸 잠만 주무세요

아버지 빨리 일어나세요!"

 

 

***********************

 

 

"아버지 미음 다 드셨으니 이제 저도 점심을 먹을게요.

오늘도 메뉴는 역시 샌드위치예요.

아버지 좋아하시는 커피도 한 잔 있어요

맛있는 것 저만 먹어서 어떡해요

오늘은 점원이 묻데요

'이걸 누가 다 드세요?'

샌드위치를 매일 세개씩 사오니까 궁금했던 모양이예요.

'제가 다 먹어요

하루 세끼 제 양식이예요'

웃으면서 그랬죠.

지하에 식당이 있는데 음식 맛이 영 아니예요

다시 가서 먹고 싶지가 않아요

그래서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했는데

3주 동안 먹은 샌드위치가 평생에 먹은 양보다 많을 것 같네요.

이제 샌드위치를 보면 아버지 생각이 날 것 같아요." 

 

 

***************************

 

 

세 끼를 미음으로 이제 600cc를 드시기 시작했는데

배변이 안되어서 설사약을 처방해 주었는데

쏟기 시작하면 30분 정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쏟으신다.

그런데 아버지가 어눌한 말투로 뭐라 그러신다.

"네가 고생해서 어떡허니?"

분명 내 귀에 그렇게 들렸다.

"아버지 일어나시기만 하면

저 고생하는 거 아무렇지도 않아요."

 

 

 

 


2012.03.21(수)

 

 

아버지가 잠깐 얼굴을 찡그리시는 것 같다.

"아버지 힘드세요?"

알아들으신 듯 고개를 끄덕이신다.

오랫만에 눈을 뜨시고 의사표현을 하신 것이다.

 

지난 주에 주치의가 잠깐 보자고 하더니

가족들이 협의 하셔서 판단을 내리셔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더 이상 효과를 기대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동생들이 모여서

일주일만 더 기다려보고 목요일에 요양병원으로 모시기로 했다.

내일이면 요양병원으로 가셔야 한다.

그런데 잦은 설사로 기저귀발진과 욕창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기저귀도 풀고 좌우로 몸을 돌려 누우시게 했다.

그랬더니 많이 좋아지시기는 했는데

완전히 나아지지는 않았다.

며칠만 더 관리를 하면 다 나을 것 같았다.

차마 이대로는 보내드릴 수가 없을 것 같다.

동생에게 전화를 해서

내가 며칠 더 있을테니 월요일에 퇴원하자고 했다.

요양병원도 군에서 운영하는 더 나은 시설이 월요일에는 자리가 난다하니

그렇게 하자고 했다.

누나 힘들어서 어떡하냐며 간병인을 알아보라고 했다.

간호사에게 퇴원수속을 월요일로 연기해달라 하고

가겠다던 요양병원도 취소했다.

"아버지 제가 며칠 더 간호해 드릴테니까

꼭 일어나셔야 해요."

아버지가 알아 들으셨는지 모르겠다.

 

 

 

 


 

2012.03.20(화)

 

 

 주무시는 중(?)에도

가끔씩 손으로 무얼 찾으시는 것처럼

더듬으신다.

내 손을 대드리면 손을 꼬옥 잡으신다.

 

 

 

주무시는 것 같아

손을 살짝 빼내려면

더욱 힘을 주어 잡으신다.

 

 

그나마 오른손은 약한데

왼손에는 아직도 힘이 있으셔서

빼내지 못할 정도로 세게 잡으신다.

지금 아버지는 손으로 말씀하시고 있는 것 같다.

 

"우리 큰딸, 이쁜 우리 딸 미안하구나!" 


2012.03.17(토)

 

 

비 개인 아침

햇살은 빛줄기를 타고

세상으로 내려오네요.

살짝 고개 내민 새싹 위로,

개나리 진달래 꽃망울 위로,

이제 그만 잠에서 깨어나라고

흔들어 깨우고 있어요.

이 빛이 아버지 눈가에도 내려와

아버지 눈을 활짝 뜨게 했으면 좋겠어요.

아버지 입가에 닿아

활짝 미소짓게 했으면 좋겠어요.

 

 

 

 


2012.03.16(금)

 

 

아버지 지금 밖에는 봄비가 내려요

눈 좀 떠보세요.

이 비를 맞으면 푸릇푸릇 새싹들이 돋아나고

세상은 봄의 향연이 시작 될텐데...

진달래 핀 산길을 아버지와 함께 걷고 싶은데...

아직도 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번도 하지 못했는데...

한번 감으신 눈을 뜨려들지 않으시네요.

점점 의식의 끈을 놓고 계신건가요?

그제만 해도

"아버지 휠체어 타고 햇빛 쬐러 나가실래요?"

희미해져가는 의식 가운데도 반갑게 고개를 끄떡이셨는데

그토록 햇빛 한번 보기를 원하셨는데...

 

***   ***   ***

 

아버지,

 옆에 보호자가

제주도에서 사온 거라며 한라봉을 주셨어요.

아버지하고 오손도손 얘기 나누며

새콤달콤한 한라봉을 까먹고 싶은데...

 

***   ***   ***

 

아버지 간밤에 이상한 꿈을 꾸었어요.

꿈에서 전 고등학생이었나봐요.

운동장에서 조회 중이었는데 사촌 언니와 함께 지각을 했어요.

반장이 지각해서 창피하다고 학교로 들어가지 못하고

남의 집 모퉁이로 숨어들었어요.

그때 건너다 보이는 앞집 마당에 두견화가 피었는데 삼층으로 피었어요.

그런데 참 희안한 것이 그게 3년간 핀 꽃이래요.

맨 아래는 연분홍이고

그 다음 층은 분홍이고

맨 위에는 올해 핀 꽃으로 가장 짙은 분홍색이었어요.

그 집으로 들어가 꽃구경을 하고 나오는데

대문 쪽에 여직까지 보지 못했던 긴 줄처럼 늘어진 꽃덩굴을 보았어요

오색 찬란한 무지개빛이 나는 것도 같고 오팔 처럼 아름다운 빛깔도 있는 듯하고

하와이 여인들이 목에 걸고 다니는 꽃레이스처럼 생겼어요

난꽃인 듯

학인 듯한 꽃모양이 특이하고 하도 예뻐서

몇번을 뒤돌아보다가 깨었어요.

잠깐 잠든 새 꾼 꿈인데

대체 무슨 꿈이죠?

 

 

 

 


2012.03.15(목)

 

오늘은 아침이 되어도 눈을 뜨지 않으신다.

더욱 깊은 잠속으로 빠지셨다.

조금씩 드시는 미음이나마 드리지 말라고 해서 못 드리고

따뜻한 물수건으로 씻겨만 드렸다.

간밤엔 계속 눈을 뜨고 계셔서

어린시절 기억들을 더듬으며 아버지에게 들려드렸다.

 아버지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3살적 일인 것 같다.

분가하지 않고 큰댁에 살 때인데

안방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시고 건넌방에 살 때

오랫만에 아버지가 먼 곳에서 오셔서 엄마와 밤 늦도록 얘기 하시던 풍경이 떠오른다.

언젠가도 이 얘기를 했더니

네가 아주 어렸을 때인데 어떻게 기억하냐며

아버지가 군대에 계실 때인데 휴가를 나오셨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군대 얘기도 해주셨는데

아버지는 5년의 군생활을 하셨으면서도

행정병으로 근무하셔서 총 한 번 안잡아보셨다고 하셨다.

네살 때 이사하는 해에는 눈이 내 키보다 높게 쌓였는데

 마당에 사람이 다닐 길만 뚫어놓고 할머니랑 같이 불을 넣으러 가던 일,

동생이 침을 많이 흘렸는데 개구리가 좋다며 앞 숲속에서 개구리를 잡아다가

불에 구워서 설탕을 찍어주시면 동생하고 나란히 앉아서 넙죽넙죽 맛있게 받아 먹던 일,

늘 함께 놀던 사촌 언니가 국민학교에 입학하자 나도 학교 보내달라고 울며 떼를 쓰자

나를 번쩍 안아 올려 대문의 우편함을 보여 주시며

이곳에 통지서가 와야 한다며 달래시던 일,

.........................

그러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버지 죽음이 두려우세요?"

대답없이 바라보고만 계신다.

오랜 투병생활을 하시며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시고

공황장애까지 오셨다.

"아버지 하나님 믿으시죠?"

"하나님을 왜 믿으세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만드셨어요.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과 행복하게 살았어요.

그런데 사람이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어요.

그래서 사람이 불행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죽음 때문이에요.

.........................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보내주셨어요.

그래서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어요.

우리가 죽으면 육체는 썩어 없어지지만 우리의 영혼은 반드시 살아서 하늘나라로 갑니다.

그때 어떻게 이곳에 왔느냐고 물으면

예수님을 믿고 왔노라고 하세요.

아버지 예수님 믿으시잖아요."

 

이 말을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편안한 잠속으로 빠져드셨다.

그리고 이 시간까지 계속 잠만 주무시고 계신다.

 

 

 


2012.03.14(수)

 

 

오랫만에 아버지가 웃으셨다.

 

간호사가 와서 체온과 혈압을 체크하고

"이름이 뭐예요?"

몇번을 물어도 대답을 안 하셨다.

눈도 잘  뜨지 않으셨다.

그러자 간호사가 아버지 가슴을 탁탁 치고 꼬집어도 보고

(의사와 간호사에게 얼마나 꼬집히셨는지

가슴 여기저기 푸릇푸릇 멍이 드셨다)

몇번 실갱이 끝에 잘 알아듣지 못할 어눌한 말투로 이름을 대셨다.

"한번 물으면 대답하셔야지!

왜 그렇게 힘들게 하셔!"

애교스런 간호사의 말에 아버지가 환하게 웃으셨다.

아버지에게 뇌졸증이 오셨다.

그래서 말이 어눌해지시고 잠만 주무신다.

 

"이름이 뭐예요?

오른 팔 들어보세요

왼 팔 들어보세요

오른쪽 다리 들어보세요

왼쪽 다리 들어보세요"

유치원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다.

여기는 00대병원 뇌졸증집중관리실이다.

옆에 아줌마는 병원 침대가 아닌 밭에 앉아 계신다.

고추를 땄더니 힘들다고 하신다.

보호자가 식사를 하러 간 사이

자꾸만 침대에서 내려 오실려고 해서

내려오시면 안된다고 했더니

빨리 설겆이를 해야 한다고도 하시고

다른 사람들은 다 일하는데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어서 그러신다고도 하셨다.

평소에 부지런히 농사를 지으셨던 분이신가 보다.

 

앞에 남자분은 간병하는 부인은 물론이고 간호사에게도 폭력을 쓰고

칸막이용 커튼도 뜯어내고

밤만 되면 병실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질러서

병실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했다.

 나중엔 보호자가 안되겠는지 퇴원하셨다.

 

그리고 젊은 애기엄마도 있다.

몸이 많이 비대한데 하루 종일 무언가를 먹었다.

아빠가 애들을 데리고 왔는데 유치원생 정도 되보이는데

참으로 안타까웠다.

 

과다한 술 담배 때문에 뇌졸증이 온 50대의 환자도 있다.

밤에는 담배 사러간다고 시간마다 일어나 부인과 싸우는 바람에  

엄청 짜증나게 했다.

아버지가 혈압계를 계속 차고 있었는데

갑자기 많이 떨어지거나 오르면 '빼삐삐' 신호음이 여러번 울리는데 

환자 부인이 건너와서 시끄러워 잠을 못자겠다며

빨리 간호사에게 연락하라며 짜증을 내고 갔다.

간호사가 자리에 없어서 일어나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걸 보고서도 그랬다.

자기네는 어떠했는지 생각도 안하는지...

다음 날 아침엔 미안타며 사과했다.

 

복도를 지나다보면 환자복을 입은 젊은 친구들도 보이는데

지병인지 사고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애타는 부모의 심정도 느껴진다.

건강한 자식은 큰 축복임을

다시 한 번 깨닫기도 하며...

 

환자를 대하는 가족들의 행동도 다양하다.

보통 환자를 애기 다루 듯 하는데

반복하는 이상 행동들을 환자로 보지않고

자꾸만 환자와 싸우는 보호자도 있어서 안타까웠다.

그런 환자를 간병하는 일이 많은 인내를 필요로 하기에

집안에 환자가 생기면 온 집안이 비상이 걸리는 것도 보았다.

어떤 가정은 파탄까지 이르기도 한다는데

내 자신 점점 나이가 들수록 예사롭지 않게 보아진다.

노후를 생각하며

건강하게 사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이런 저런 생각에 빠졌는데

갑자기

"또 싸?"

간호사가 웃으며 한마디 한다.

환자분이 보호자가 없는 사이 침대에서 내려와 짐을 싸고 있다.

 

 

 


2012.03.10(토)

 

롤스크린을 올렸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다.

밖은 따듯한 봄날인가 보다.

지난 밤에 코에 꽂은 호스를 또 뽑아 놓으셨다.

그래서 아침엔 입으로 미음을 드시게 했더니 자꾸만 사래가 들려서

의사가 와서 다시 호스를 꽂는데

얼마나 고통스러우신지 발작을 일으키시는 것처럼

온 몸으로 호소를 하신다.

어렵게 꽂은 호스를 통해 300cc의 미음을 드렸다.

그리고 뜨거운 물수건으로 온 몸을 닦아드렸다.

얼굴엔 스킨과 로션도 발라드렸다.

개운하신지 계속 잠속으로 빠져드신다.

그러다가 가끔씩 눈을 뜨시고 가만히 바라보신다.

그리고 다시 스르르 감기는 눈...

 

새벽녘에는 잠이 깨셔서 말을 걸어보았다.

발음이 정확하지 않으셔서  대화가 잘 통하지는 않았지만

하신 말씀을 스무고개를 하듯 몇번씩 되물어 보아

짐작으로 뜻을 헤아려 본다.

"내가 빨리 죽어야 니들 고생 안시키는데..."

 

너무 건강하셔서 오래 살면 자식들 고생시킨다며 염려하셨던 분인데

10여년전 임파선암으로 췌장과 대장을 잘라내셨다.

수술을 하시고 관리를 잘 하셔서 암도 이겨내시고 건강을 회복하신 듯 했는데

팔십이 넘으시면서 자꾸 쇠약해지셨다.

처음 수술하시던 날

10년만 더 우리 곁에 계시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었다.

그 때 상황에선 그 십 년이 큰 욕심인 줄 알았다.

그리고 그 십 년이 지났다.

그런데 아직은 아니다.

5년만, 5년만 더...

 곁에 계시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2011.09.15(목)

 

"엄마 콩나물밥 어떻게 해?"

딸애가 오랫만에 전화를 해서 콩나물밥에 대해 묻는다.

해마다 한국에 들어오면 꼭 콩나물밥을 해달래서 먹고 나가곤 했는데

두 해를 못들어오더니 그 콩나물밥이 생각났나보다.

"간장에 무엇 무엇을 넣어야 해?"

"파, 마늘 다져넣고

고추가루, 깨소금, 참기름도 넣고..."

"파가 없는데 대신 양파 다져 넣어도 돼?"

"파가 없으면 마늘만 다져 넣어."

"마늘도 없고 마늘가루는 있는데..."

"그럼 가루라도 넣고 쌀을 1시간 이상 충분히 불려서 해."

"에이~ 그럼 하지 말아야겠다."

그리곤 전화를 끊었다.

가슴이 짠해진다.

 

어릴 때 먹던 음식을 떠올리며 엄마를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러면서 우리 애들은 어떤 음식을 보며 나를 떠올릴까?

우리 애들에게도 그런 음식이 있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는데

아마도 우리 딸은 콩나물밥을 떠올리며 내 생각을 하지 않을까?

오늘 저녁 두 애들 생각에  마음이 스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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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9

 

"자네 포도 먹고 싶어했나?

하나님께서 포도를 보내셨네!"

 

교회에서 돌아와보니

베란다에 포도 한 상자가 놓여있었다.

남편 직장에 영동에 본가가 있는 직원이 있는데

시골에 다녀오면서 가져왔다고 한다.

 

저녁을 먹고 아들에게 포도를 씻어주고

설겆이를 하려고 하는데 남편이 밀쳐낸다.

 

"설겆이는 내가 할께

자네도 가서 포도 먹어!"

 

왠 일인가 싶어

그냥 설겆이를 계속하려다가

과일을 무척 좋아하는 내게

남편의 배려가 고마워서

포도를 가지고 쇼파로 와서

오랫만에 TV를 보며 맛있게 포도를 먹었다.

행복감에 젖어 느긋하게 포도를 먹고 있을 때

갑자기 정적을 깨는 소리

 

쨍그렁~

 

"헉 뭐 깼어요?

"작은 거 하나 깨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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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2.31(목)

 

 

 

 

 

 

 

 

 

"어느날 산길을 걷다가

아무도 모르게 갑자기 사라질 수 있다면 좋겠어!"

"저도 그랬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는데...

내가 좋아하는 산길을 걷다가

그곳에서 죽을 수 있다면 참 좋을거란 생각을 했어요.

아~  참~

전 산에서 죽으면 안되네요

장기기증을 하기로 했거든요"

 

산길을 걷다가 어느 분과 나눈 대화인데

죽음을 얘기하다가 갑자기 장기기증이 떠올랐다.

 

오래전부터 남편과 아들에게

'내가 죽거든 기증할 수 있는 장기는 모두 다 기증하라'고

유언처럼 말했었다.

그런데 어디에 어떻게 등록해야 하는지 몰라

말로만 그치고 말았는데

혹시라도 갑자기 죽음을 맞아 가족이 내 의사를 전할 수 없을 때

뭔가 증서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오늘 서울대병원에 가는 날이어서 검사를 끝내고

안내센터에 가서 장기기증센터에 대해 물으니

1층 외과병동 옆에 장기기증센터가 있으니 가서 상담을 하라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바로 등록을 하고

장기기증등록 신청서 두장을 더 가지고 나왔다.

울남편도 나와 같은 생각이어서

바쁜 남편을 대신해 내가 대리 접수 시키고

울아들은 의사를 물어 가능하면 등록하도록 권할 생각이다.

장기기증등록카드는 발급해 우편으로 보내준다고 한다.

장기기증 등록을 하고 나니

내 몸이 이젠 나만의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

건강관리에 더욱 신경을 써서

누군가에게 물려줄 장기를 잘 관리해햐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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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광활한 대지에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밭

그 사이를 울부짖으며 헤메이는 여인

그 여인을 따라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하도 훌쩍거리니

그가 가만히 내손을 잡았다.

살짝 빼내려하자 더욱 힘을 주어 잡아주었다.

통통 부운 눈으로 극장 밖을 나서기가 창피할 정도였는데

"왠 눈물이 그렇게 많아요?"

그말에 너무 무안하여 대답도 못하고 살짝 눈만 흘겼던

빛 바랜 그날이 갑자기 해바라기꽃속에 피어난다.

그를 만난 건 친구의 결혼식 날

신랑 신부 친구들이 모인 피로연이었다.

함께 어울려 즐거운 축하연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며칠 후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누구에게도 전화 번호를 알려준 적이 없기에 정말 뜻 밖이었다.

그의 얘기로는 내 친구 중 하나가 그에게 관심이 있었는지 전화번호를 물어와서 알려주었는데

다음날 내 친구가 그에게 전화를 해서 그 때 내 전화번호를 알아냈다고 한다.

그 많은 미인들을 놔두고 별로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나를 택한 그가 고맙기도 하고

그래서 몇번 만났었다.

그러다가 내가 그림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그의 여동생이 미술을 전공했는데

졸업작품 전시회를 한다며 같이 가자해서 갔다가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인연이 아니었는지

그토록 내게 열정을 보였는데 받아주지 못하고

르노와르 화집을 돌려주며 끝을 맺고 말았다.

해바라기 덕분에 잊고 있었던 옛 일을 회상하며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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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5.18(월)

 

"얘 가면 어떡하나!"

떠날 채비를 하는 나를 보시며 아버지가 불안해 하신다.

"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미숙이 올거예요.

갔다가 아버지 힘드시면 다시 올께요."

그 한마디를 남기고

난 올라와야 했다.

 

내 너를 다시 볼 수 있을까?

꼭 그런 표정이셨다.

가던 길을 멈추고 몇번을 뒤돌아 보아도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꼼짝 안하시고 그대로 서계셨다.

돌아서는 발걸음이 한없이 무겁다.

길을 꺽어 들어서 내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마 그 자리에 한참을 그렇게 서 계셨을 것이다.

혹 눈물을 흘리고 계시진 않으셨는지...

그런 쓸쓸하고 허전한 모습은 처음이어서

더욱 가슴이 아팠다.

 

"제발 나 좀 죽여줘!"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시면서 그러셨다고 한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그런 말씀을 다 하셨을까

호흡곤란으로 가슴이 답답해지며 그 충격이 크셨던가보다.

당신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주 병원을 들락거리며 입원하시게 되어

자식들 오가는 것 또한 부담스러우셨을 것이다.

또 병원에 가게되면 어쩌나 자꾸 불안하고 공포가 느껴진다고 하셨다.

그러면 어지럽고 핑돌고

눈도 보이지 않으신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병원에 모시고가니 공황장애라 한다.

내 아버지!

그 의지 강하시고 당당하시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이젠 딸에게라도 의지하고 싶은 

불안한 어린아이 같이 변해버린 우리 아버지

무엇이 우리 아버지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야속하고 야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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