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14(수)
오랫만에 아버지가 웃으셨다.
간호사가 와서 체온과 혈압을 체크하고
"이름이 뭐예요?"
몇번을 물어도 대답을 안 하셨다.
눈도 잘 뜨지 않으셨다.
그러자 간호사가 아버지 가슴을 탁탁 치고 꼬집어도 보고
(의사와 간호사에게 얼마나 꼬집히셨는지
가슴 여기저기 푸릇푸릇 멍이 드셨다)
몇번 실갱이 끝에 잘 알아듣지 못할 어눌한 말투로 이름을 대셨다.
"한번 물으면 대답하셔야지!
왜 그렇게 힘들게 하셔!"
애교스런 간호사의 말에 아버지가 환하게 웃으셨다.
아버지에게 뇌졸증이 오셨다.
그래서 말이 어눌해지시고 잠만 주무신다.
"이름이 뭐예요?
오른 팔 들어보세요
왼 팔 들어보세요
오른쪽 다리 들어보세요
왼쪽 다리 들어보세요"
유치원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다.
여기는 00대병원 뇌졸증집중관리실이다.
옆에 아줌마는 병원 침대가 아닌 밭에 앉아 계신다.
고추를 땄더니 힘들다고 하신다.
보호자가 식사를 하러 간 사이
자꾸만 침대에서 내려 오실려고 해서
내려오시면 안된다고 했더니
빨리 설겆이를 해야 한다고도 하시고
다른 사람들은 다 일하는데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어서 그러신다고도 하셨다.
평소에 부지런히 농사를 지으셨던 분이신가 보다.
앞에 남자분은 간병하는 부인은 물론이고 간호사에게도 폭력을 쓰고
칸막이용 커튼도 뜯어내고
밤만 되면 병실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질러서
병실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했다.
나중엔 보호자가 안되겠는지 퇴원하셨다.
그리고 젊은 애기엄마도 있다.
몸이 많이 비대한데 하루 종일 무언가를 먹었다.
아빠가 애들을 데리고 왔는데 유치원생 정도 되보이는데
참으로 안타까웠다.
과다한 술 담배 때문에 뇌졸증이 온 50대의 환자도 있다.
밤에는 담배 사러간다고 시간마다 일어나 부인과 싸우는 바람에
엄청 짜증나게 했다.
아버지가 혈압계를 계속 차고 있었는데
갑자기 많이 떨어지거나 오르면 '빼삐삐' 신호음이 여러번 울리는데
환자 부인이 건너와서 시끄러워 잠을 못자겠다며
빨리 간호사에게 연락하라며 짜증을 내고 갔다.
간호사가 자리에 없어서 일어나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걸 보고서도 그랬다.
자기네는 어떠했는지 생각도 안하는지...
다음 날 아침엔 미안타며 사과했다.
복도를 지나다보면 환자복을 입은 젊은 친구들도 보이는데
지병인지 사고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애타는 부모의 심정도 느껴진다.
건강한 자식은 큰 축복임을
다시 한 번 깨닫기도 하며...
환자를 대하는 가족들의 행동도 다양하다.
보통 환자를 애기 다루 듯 하는데
반복하는 이상 행동들을 환자로 보지않고
자꾸만 환자와 싸우는 보호자도 있어서 안타까웠다.
그런 환자를 간병하는 일이 많은 인내를 필요로 하기에
집안에 환자가 생기면 온 집안이 비상이 걸리는 것도 보았다.
어떤 가정은 파탄까지 이르기도 한다는데
내 자신 점점 나이가 들수록 예사롭지 않게 보아진다.
노후를 생각하며
건강하게 사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이런 저런 생각에 빠졌는데
갑자기
"또 싸?"
간호사가 웃으며 한마디 한다.
환자분이 보호자가 없는 사이 침대에서 내려와 짐을 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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