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26(화)
모처럼 친구들 넷이 모여
전시회도 가고,
점심도 먹고,
그간의 소식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근황을 나누었다.
만남의 장소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1번 출구
몇년전 문화답사를 왔을 때 공사가 한창이었는데
지금은 몰라보게 변했다
먼저 와서 기다리던 친구들
오늘 만남의 목적은
간송문화전 관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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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는 이미 관람한 후라서
시원한 곳에서 책을 읽으며 기다리기로 하고
셋이서 입장을 했다
주요작품 : <미인도> 신윤복, <마상청앵> 김홍도, <<혜원전신첩>> 신윤복 외 80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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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전형필은 고려 말 학자 채미헌공 전오륜의 16대손이자,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부자 전영기의 장남으로 1906년 태어났다. 전영기는 현재 종로 4가인 배오개의 상권은 물론, 왕십리 등 서울 일대와 황해도 연안, 경기도 일대, 충남 공주 등지의 농지를 소유한 십만 석 부자였다. 간송은 유복한 유년기를 보냈지만 이후, 직계 가족들의 연이은 죽음으로 몹시 고통스러운 나날 들을 보냈다. 이때 한학과 신학문을 넘나들며 서책을 모으고 책 읽기에 몰두했던 체험이 후일 대수장가로 성장시킨 밑거름이 되었다. 간송은 외종사촌 월탄 박종화가 다녔던 휘문고보를 다녔는데 이때의 스승이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이자 민족주의자였던 고희동이었다. 간송의 비범 함과 웅지를 간파한고희동은 한학의 대가이며 민족 미술의 대계를 정리한 『근역서화징』의 저자 위창 오세창에게 간송을 소 |
개한다. 당시 최고의 감식안이었던 위창은 간송에게 우리 문화 의 소중함을 일깨워줬다. 간송 전형필의 극적인문화재 수집담은 오늘날에도 회자되는데 국보 제 68호로
지정된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을 일본인 수장가 마에다 사이이치로로부터 2만원, 당시 기와집 20채의 가격에 구입한 일화, 일제의 민족 말살정책이 극에 달했던 1940년
일제가 그토록 없애고자 했던 『훈민정음』을 먼저 발견하고 수집한 일화, 한국전쟁 때 주요 유물들을 가지고 피란했던 일화, 휴전 후 후진 양성에 힘썼던 일화들이 생
생하게 전해지고 있다. 일제의 압제가 더욱 심해지고 그들의 세력이 확장일로에 있었을 때에도, 간송은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는 확신을 하고 있었다. 그 암울한 시기에
도 심혈을 기울여 민족 문화재 를 모아 ‘보화각 (葆華閣)’을 설립했고, 대표적 민족사학인 보성학교를 인수하여 후진을 육성한 사실이 바로 그 증거다. 또한 문화 예술계
의 후학 양성에 힘쓰는가 하면 교육사업, 장학사업에 힘을 쏟았다. 간송 전형필은 민족문화 보존 뿐만 아니라 교육사업 등 다양한 분야에 공헌하였다. 이처럼 간송미술
관은 단순한 탐미의 대상으로 유물을 모아 놓은 곳이 아닌, 우리 민족 얼과 혼을 지켜내고 후대에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일깨우려 했던 선각자의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였다.
우리 민족의 얼과 혼이 담긴 문화재 보존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신 분들이 있어
우리는 편하게 멋진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문화해설사가 설명을 해주는데
방학을 맞은 학생들과 부모들이 같이 와서
관람객이 많다보니
해설사의 설명이 잘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해설사의 설명을 포기하고
개별 관람을 택했다
그 당시 최고급으로 주문제작했다는
보화각(葆華閣)의 진열장인가 보다
야묘도추 (野猫盜雛: 들고양이 병아리를 훔치다)
김득신(金得臣),
지본담채,
22.4×27.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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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에 꽃망울이 움트는 화창한 봄날 도둑고양이가 병아리를 잽싸게 채어 달아나자 놀란 어미닭이 상대가 고양이라는 사실도 잊은 듯 새끼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무섭게 뒤를 쫓고, 마루와 방에 있던 주인 부부가 하던 일을 팽개치고 한꺼번에 내달으며 병아리를 구하려 한다. 마루 위에서 동동걸음을 치는 아내의 동작과 탕건이 굴러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마루 아래로 뛰어내리면서 장죽으로 고양이를 후려치는 남편의 동작이 그림에 생생한 활기를 불어넣는다. 굴러 떨어진 자리틀과 남편은 자리를 매고 있었던 듯하고 아내는 맨발이니 길쌈 중이었던 모양이다. 두 날개와 꼬리깃을 있는 대로 활짝 펴고 온 몸의 깃털을 곤두세운 채 무서운 기세로 땅을 박차고 날아 오르며 고양이에게 달려드는 어미닭의 생동감 넘치는 표현은 꼬꼬댁 소리가 들릴 만큼 박진감 넘친다. 그에 반해 장죽이 미치지 않을 만큼 잽싸게 달아나는 검은 고양이는 이미 병아리 한 마리를 입안 가득히 물고 여유로운 자세로 주인 부부의 눈치를 살피며 속도를 조절하는 듯 하다. 참으로 일순간에 벌어진 한 때의 소동을 표정까지 정확하게 포착하여 그려낸 생활장면이다. |
전원생활을 꿈꾸고 있어서인지
내 마음을 끌었던 작품이다
그 당시에도 아내의 일을 거들어 준 남편이 있었던 듯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좀더 자세하게 볼 수 있다
마상청앵 (馬上聽鶯: 말 위에서 꾀꼬리 소리 듣다)
김홍도(金弘道),
지본담채,
117.2×52.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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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는 진경풍속화풍의 대미를 난만하게 장식한 화가로 이〈마상청앵〉이 그런 그림 중의 대표작이다. 신록이 짙어가고 뭇꽃들이 피어나는 늦봄, 어느 화창한 날에 젊은 선비가 봄기운을 이기지 못해 문득 말에 올라 봄을 찾아 나섰다가 길가 버드나무 위에서 꾀꼬리 한 쌍이 화답(和答)하며 노니는 것에 넋을 빼앗긴 채 서서 바라보는 장면을 사생해 낸 그림이다. 꾀꼬리의 화답 장면과 넋 나간 선비의 모습을 돋보이게 하려는 듯 버드나무는 간결하게 처리하여 길섶 한곁으로 몰아 놓고 선비 일행을 큰길 가운데로 내세운 채 나머지는 모두 하늘로 비워 둔 대담한 구도를 보였다. 선비와 말을 모는 떠꺼머리 총각의 옷주름은 단원 특유의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철선묘(鐵線描)로 처리하여 조선옷이 가지는 넉넉하면서도 빳빳한 옷맵시를 유감없이 표현해 내었다. 반면 갓과 말 그리고 길섶 풀들은 먹의 번짐만을 이용하였으니 철선묘와 대조를 이루어 조화를 얻게 하려는 의도일 듯하다. 이런 봄 냄새 물씬 풍기는 그림에 단원과 동갑 그림 친구인 고송유수관 이인문은 이런 제화시로 춘정에 공감한다.
“아리따운 사람이 꽃 밑에서 천가지 소리로 생황을 부는 듯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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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李霆),
지본담채,
24.0×16.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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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달이 으스름하게 빛나는 산허리 바위에 걸터앉은 고사가 손을 들어 달을 가리킨다. 도포 한 자락만 걸친 듯 입고 있을 뿐 더벅머리와 맨발의 격식 없는 모양새는 세속에서 벗어난 경지를 말해준다. 달을 바라보며 얼굴에 가득 담은 천진한 웃음은 세상바깥의 이치를 깨달은 희열일 것이다. 충남 공주(公州)의 탄천(灘川)에 ‘달이 먼저 오는 정자(月先亭)’라 이름 지은 별서(別墅)에서 은거했던 탄은 이정의 꿈이 이런 모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
이명욱(李明郁),
지본담채,
173.0×94.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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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초문답은 어부와 나무꾼을 그린 그림이다. 북송의 유학자 소옹은 <어초문대(漁樵問對)>를 지어 어부와 나뭇꾼이 서로 문답하는 체재로 천지 사물의 의리(義理)를 천명하였다. 이후로 세속에 골몰하지 않고 천리에 따라 삶을 사는 어부와 나뭇꾼의 문답에 꾸밈없는 세상의 이치를 담아낸 그림이 한 정형을 이루었다. 이명욱의 〈어초문답〉은 어부와 초부 두 인물을 크게 배치하고 어부가 든 긴 낚싯대를 통해 화면을 구분하고 총총하게 갈대숲을 그려 넣어서 좋은 구도를 이루었다. 어부는 테만 있는 갓을 이마가 나오도록 눌러 쓰고 왼손에는 두 마리 고기를 엮어 들었는데 반팔에 무릎을 드러낸 맨발 차림이다. 초부는 머리를 뒤로 묶고 막대를 오른쪽 어깨에 걸친 채 허리춤에 도끼를 꿰찼고 왼손으로 저쪽을 가리키며 이야기에 열심이다. 굵고 가는 필선을 겹쳐 사용하여 옷자락에 풍부한 양감을 주었다. 나무꾼이라기보다 선비의 풍모를 연상하게 하는 초부의 옷자락은 걸음 방향과는 반대로 앞으로 휘날려 자세의 균형을 이룬다. 옷자락까지 화면의 균형을 고려한 치밀한 구성이다. 두 사람의 얼굴에서는 범상함을 넘어선 경지가 배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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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반세기가 지난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모 아동미술전람회에 출품한다고 그렸던 그림과 이미지가 많이 닮았다
아직도 내 마음에 오래도록 남아있는 마지막 그림
조영석(趙榮?)
견본채색, 31.5×43.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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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선비들이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 장기를 두며 한여름 더위를 식히는 장면이다. 장기가 막판에 다다른 듯 죽은 말들이 수북이 쌓이고 판위에는 말이 몇 마리 남지 않았다. 오른쪽의 삿갓 쓴 선비가 말을 놓으며 반쯤 돌아앉은 채 일어설 태세인 것으로 보아 한 두 수면 끝나는 묘수로 장을 부른 모양이다. 외통수에 걸려 수가 없는지 낙천건을 쓴 선비는 난감한 표정이 역력하고 그 옆의 탕건 쓴 선비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감탄을 연발한다. 제비부리댕기를 드린 총각 하나가 지나가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듯 돗자리 끝에 올라서서 방정맞게 부채질을 해대며 어깨 너머로 아는 체를 하고 소나무 아래 사방건을 쓴 선비는 바둑판과 쌍육판을 낀채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이 한판의 광경을 구경하며 미소 짓는다.소나무와 느티나무를 잘라내어 화면을 넓게 비우고 다양한 동작과 표정을 실감나게 묘사해 막판 |
에 다다른 장기판의 흥분을 생생하게 잡아냈다. 고아하고 담백한 필선은 선비들의 아취를 전해주고 맑은 담채와 화사한 진채는 한양선비들의 도시적인 세련미를 풍겨준다. 자신을 포함한 한양 사대부들의 친근한 생활상을 그린 것이라서 조영석의 풍속화 중에서도 돋보이는 수작이다. 장기 두는 그림을 <현이도>라고 부른 것은 <논어(論語>에 나오는 공자의 말에서 유래된 것이다. “배불리 먹고 하루 종일 마음 쓰는 데가 없으면 딱한 일이다. 바둑과 장기가 있지 아니한가? 그것이라도 하는 것이 오히려 현명하다.”
노안이 온 침침한 눈으로
밝지 않은 조명 아래 유리 진열장 안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많이 답답하여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는데
인터넷을 검색하여 보니
하나하나 살아있는 표정이 재미있다.
제비부리댕기를 드린 총각 하나가 지나가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듯 돗자리 끝에 올라서서
방정맞게 부채질을 해대며 어깨 너머로 아는 체를 하고
오른쪽의 삿갓 쓴 선비가 말을 놓으며
반쯤 돌아앉은 채 일어설 태세인 것으로 보아
한 두 수면 끝나는 묘수로 장을 부른 모양이다
외통수에 걸려 수가 없는지 낙천건을 쓴 선비는
난감한 표정이 역력하고
그 옆의 탕건 쓴 선비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감탄을 연발한다.
소나무 아래 사방건을 쓴 선비는
바둑판과 쌍육판을 낀 채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이 한판의 광경을 구경하며 미소 짓는다.
신윤복의 월하정인 모델이 테디베어로 바뀌었다
미인도의 미인 역시 테디베어로
'◆나의 일상 > ♣책,영화,공연,전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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