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람들은 밥그릇도 들고나와 먹고 빨래도 들고 나와서 하고...

 

 

 

 

 

 

 

 

 

 

 

 

 

 

 

 

 

 

 

 

 

 

 

 

 

 

저녁메뉴

양고기꼬치가 제일 맛있었다

 

 

 

꼬치를 숯불에 구어 가루향신료에 찍어먹는다.

향신료는 4종류가 있다는데 맵지않은 걸로 2종류만 주문을 했다.

다먹은 꼬치에 생마늘도 꿰어 구어 먹는다

 

 

찹쌀순대가 쫄깃쫄깃 참 맛있었다.

점심 먹고 속이 불편하여 조금만 먹는다 해놓고 저 꼬치 나혼자서 다 먹은 거다.

모든 음식을 다 잘 먹는다고 중국에서 살아도 되겠다고 한다.

 

 

조선족이 한다는 꼬치구이집 연변뀀점

 

길거리에서도 꼬치구이를 팔고 있다

 

다음날 오후(2008.06.01) 돌아오는 비행기안에서 바라본 일몰

 

 

2008.05.31(토)

 

졸정원에서 나와

수저우의 옛거리인 산당가로 시장구경을 갔다.

 

 

 

 

 

 

 

 

 

 

 

점심에 과식을 해서 저 발효두부튀김을 맛보지 못한게 아쉬웠다.

냄새는 좀 고약하지만 한번 맛을 들이면 잊지 못한다는데... 

 

수석판매점에 들어갔는데 수석테이블이 넘 멋져서...

 

이 돌 가격은 오천만원 정도 라고 한다 

 

 

 

 

전통과자라는데 맛보고 싶었는데 점심에 과식을 했는지 속이 안좋아서...

 

 

 

진주조개 한마리당 20元 조금 큰 진주를 원하면 30元이다

 

한마리를 잡으니 저렇게 많은 진주가 나온다.

  

모양이 예쁜 건 반지나 귀걸이를 만들고 나머지는 팔찌를 만들어준다.

남 만드는 것 구경하며 사진만 찍어왔다.

 

가공하여 반듯한 모양으로 만든다 

 

 

 

 

 

 

 

 

 

 

 

 

 

 

 

 

살구 비슷한 저 과일 이름은 '비버'라 했다

 

달콤한 맛이 괜찮은데 저렇게 씨가 많아서...

 

 

 

살짝 보이는 꼬마 엉덩이가 넘 귀여워... 

 

 

 

 

 


 

 

 

 

 

 

 

 

 

 

 

 

 

 

 

 

다원에서 공연이 있어 구경 겸 들어가 메뉴판에 국화차가 있어서 황국을 생각하고 주문을 했는데 희멀건 빛깔에 향기도 없고 ...

그래도 다 마시고나면 어느새 와서 연거푸 뜨거운 물을 부어주었다

 

동영상 촬영을 했더니 부르던 곡을 마치고 곡목을 적은 종이를 가지고와 신청을 하란다

등려군(鄧麗君)의 야래향(夜來香)이 눈에 띄여 신청을 했더니 뭐라 하는데 통 알아들을 수는 없고 눈치로 보아 돈을 내라는 것 같아

"Money?"  그랬더니 50元을 내란다.

1~20元만 했어도 냈을텐데 너무 비싸다는 생각에 no 손을 내젓고 나왔다.

 

 

 

 

 

 

 

중국의 처마는 이처럼 앙칼지고 요염한 모습이다.

우리나라의 다소곳하고 보일듯 말듯 수줍은 미소 같은 모습이 깊은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듯...

 

 

 

 

 

 

 

 

 

박물관은 관람시간이 16:30에 종료되어 들어가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2008.05.31(토)

 

베이징의 이화원, 승덕의 피서산장, 그리고 수저우의 졸정원유원을 중국의 4대 명원이라고 한다.

북방의 이화원과 피서산장은 황제가 머물던 궁정식 정원으로 규모가 크고 화려하지만

남방의 졸정원과 유원은 문인이나 관료의 개인 소유로 소박하고 단아한 느낌이 특징이라고 한다.

졸정원은 명나라 때 어사였던 왕헌신이 모함으로 낙향해 칩거 생활을 하며 세운 정원인데

건물을 지을 당시 오문화파의 대표 인물인 문정명이 직접 설계에 참여한 것으로도 유명 하다고 한다.

자신을 모함한 위정자들에게 각성을 촉구하라는 뜻으로 어리석은 정치, 정권이라는 뜻이 담긴 졸정원으로 지었다고 한다.

그런데 왕헌신의 아들이 도박에 빠져 그 많은 재산을 다 탕진하고  멋지고 아름다운 이 정원도 도박판에 모두 날려버렸다고 한다.

지금은 개인소유가 아닌 국가소유로 정부에서 관리한다고 한다.

졸정원은 동원, 중원, 서원으로 이루어지는데 물의 도시답게 60% 이상이 연못이며

연못 주변에 정자와 다리 회랑을 배치했고 사계절 내내 푸른 나무와 아름다운 꽃들이 경관을 더욱 멋지게 장식한다고 한다.

 

 

 

 

 

  

 

 

 

 

자주괭이밥을 도로가에도 정원에도 가득 심었다.

 

 

 

 

 

 

 

 

 

 

혼자 앉아서 노래를 흥얼거리는 모습이 귀여워 살짝~

 

 

 

 

 

그 많은 창살이 같은 모양이 없이 다 제 각각이다.

 

 

 

 

 

 

 

 

 

 

  

 

 
  

 

 

 

 

 

바닥이변 바닥

창문이면 창문

어디 하나 소홀한 데가 없이 모두가 예술이다.

 

 

 

 

 

 

 

 

 

 

 

 

 

 

 

 

 

 

 

 

 

 

오왕 합려의 유체와 함께 3,000여 개의 검이 묻혔다는 '검지'

그러나 진시황이 명검을 찾기위해 땅을 파헤쳤지만 1개의 검도 구하지 못했다고 한다.

 

 

 

 

 

 

 

 

 

 

 

  

점심메뉴

이렇게 포장해 놓고 돈을 받았다.                                                 돼지족발채라 했다

 

미나리 비슷한 줄기 속이 비어있는 야채를 볶은 것                        장어와 우엉뿌리 같은 것을 함께 볶았다 

 

 

생선머리와 연두부에 육수를 넣고 끓인 것

국물 맛이 아주 좋았다

중국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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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31(토)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여니 맑은 날씨다.

상하이에서는 일년에 몇번 없는 아주 보기드문 날씨라고 한다.

오늘은 상하이에서 서쪽으로 약 90km 떨어진

오나라의 수도였던 수저우(蘇州)로 갔다.

이곳은 베이징과 항저우를 잇는 대운하가 흘렀던 곳으로

예로부터 수상교통이 발달했다고 한다.

동양의 베니스라 불리울 정도로 도시 전체의 5분의 4가 호수로 이루어져

중국 남부 지역의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중국의 4대 정원 중 2곳이 이곳에 있다고 한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호구(虎丘)다.

춘추전국시대 말기에 오나라 왕 부차가

그의 아버지 합려의 묘역으로 조성한 곳이라고 하는데

합려를 매장한지 3일째 되는 날 호랑이가 나타나서

무덤을 지켰다는 전설 때문에 虎丘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호구탑

호구산 정상에 있는 높이 47.5m인 팔각형 모양의 7층 석탑

약 15℃ 정도 기울어진 모습 때문에 중국판 피사탑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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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30(금)

 

맛있는 저녁을 먹고  

'세계건축박물관'으로 불리는 와이탄으로 갔다.

지난번 왔을 때 그 멋지다는 야경을 놓쳐서 무척 아쉬웠는데

이번엔 꼭 보고 가려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황포강에 도착하니

환상적인 불빛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간밤에 잠도 설치고 종일 걸었더니 어찌나 피곤한지 눈이 안떠질 정도여서

잠깐만 돌아보고 가리라 생각했는데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우리는 팔장을 끼고 제방 끝까지 걸었다.

 

 

 

 

1949년 해방 후 상해시 초임 시장인 진의(陈毅 천이) 동상

 

 

 

 

 

 

 

 

 

 

 

 

 

 

   

 

 

 

 

  

 

 

 

 

 

 




2008.05.30(금)


 

미술거리에서 나와 윤봉길의사 기념관이 있는 홍커우공원(虹口公園)으로 갔다.

중국 현대문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루쉰(魯迅)의 묘와 기념관이 있어서 루쉰공원(魯迅公園)으로도 불리는데

공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춤도 추고,

악기도 연주하고,

산책도 하고,

아이들과 공놀이도 하며 여러가지 놀이문화를 즐기고 있었는데

중국사람들의 카드놀이는 길거리에도 공원에도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외진 곳에는 젊은 층들의 특히 고교생 정도의 좀 어리게 느껴지는 학생들까지도

서슴없는 진한 애정표현에 눈길을 돌려야했다.

북경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자유스런 풍경이다.   

 

이곳에도 메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공원 호수 주변에는 흰색과 분홍의 유도화(협죽도)가 한창 피어나고 있었다.

 

 

 

 

 

 

저안에 교복 입은 학생들 인것 같은데...

 

 

 

루쉰 동상

 

 

 

 

 

 

 

  

 

 

 

 

 

윤봉길의사 기념관 매정(梅亭)

 

매정안에는 윤봉길의사 일대기와 사진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동상 외에는 사진 촬영을 금하였다.

의거 직전 김구선생과 교환했다는 시계와 당시 사용했던 폭탄 도시락과 물통 모형을 직접보니 가슴이 뭉클하였다.

25세의 한창 젊은 나이에 그생을 제대로 펼치지도 못하고 나라에 바친 그분의 뜻을 다시 한번 새기며 공원을 나섰다. 

 

 

 

 

 

동문 경비실 앞에 널려있는 양말과 구두

 

저녁식사를 하러 간 식당 2층에서 바라본 풍경

 

 

 

저녁으로 먹은 샤브샤브

시래기국 비슷한 육수에 쇠고기와 양고기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생선, 팽이와 양송이버섯, 콩으로 만들었다는 유부 비슷한 것,

만두 등을 넣어 먹었는데 아주 맛 있었다.

어느 나라를 가든 음식은 다 잘 먹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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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30(금)

 

남편 출장길에 따라나선 상하이,

무엇보다도 패키지여행이 아닌

내맘대로 자유로이 여행할 수 있다는 점이 맘에 들었다.

포동공항에 내리니

2년전과 똑같이 자욱한 안개로 흐리멍텅한 날씨다.

호텔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상해역 북쪽에 있는 미술의 거리로 갔다.

예전엔 공장지대였는데 공장들이 빠져나가면서 예술가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작업실과 화랑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전시와 판매도 성행하여 많은 관람객들이 찾고 있다. 

예술의 세계도 빈부의 차는 심하고

그림들을 보면서

인물묘사는 미적인 표현 보다는 심리적 표현을 중요시 한 듯하고

그림들에서도 사회주의가 느껴짐은 지나친 편견일지...

맘에 드는 그림과 조각품을 사고 싶은 마음 간절하였지만 

주머니 사정상 관람으로 만족하고

사진 촬영을 허락하는 곳도 있어서 몇장씩 담아보았다.

 

 

 비행기에서 내다본 흰구름 가득한 하늘이 시베리아벌판 같았다 

 

 

 

 

 

 

 

 

 

 

 

 

 

 

 

 

 

 

 

 

  

 

 

 

 

 

 

 

 

 

 

 

 

 

 

요 그림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는...

볼수록 맘에 드는 그림

 

 

벽의 낙서들도 모두 예술로 보인다

 

 

 

 

 

 

 

 

 

 

 

 

 

 

 

 

 

 

 

 

 

 

 

 

 

 

 

 

 

 

 






 


    
 

 


2007.11.05(월)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되고 관심이 컸던 아소산으로 갔다.

일본 천황이 방문을 한다해서 관광객들을 통제해 못 볼지도 모른다는 말에 서운하기도 했는데

다행히 통제는 풀렸는데 비가 내린다.

아소산은 높이가 1592m여서 기상이변이 심하여 날씨나 유황가스 분출에 따라

관광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혹시라도 못볼까봐 마음이 조마조마 했다.

그런데 다행히 보기 힘들다는 옥빛깔의 유황물까지 볼 수 있었다. 

 

아소산 가는 길에 차창 밖 풍경들

  

 

 

 

 

 

산마다 빽빽한 삼나무 숲이 부러웠다.

일본에 있는 삼나무를 전부 팔면 일본인들이 10년은 먹고 살 수 있다 한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는 목재로 별 가치가 없는 아카시아나 왜소나무 등을 심게 만든  일본인들의 얄팍한 행동이 얄미웠다. 

 

 

 

 

처음으로 보는 모습이다

아마도 무덤인 듯...

 

 

 

 

 

 

용암이 흘러내린 자욱이 또렷하다

 

 

 

 

 

케이블카를 타고 저 분화구가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저 옥빛 물을 보기가 어렵다는데 조금 기다리니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2007.11.05(월)

 

어제 저녁 고베항에서 딸과 헤어져 훼리를 타고 오이타항으로 왔다.

딸도 같이 오고 싶어했지만 여려가지 여건상 고베에 남아서

혼자서 하루를 더 돌아보기로 했는데

막상 혼자 남게 되니 저도 기분이 별로인지 그냥 동경으로 돌아갈까 망설이더니

호텔이며 모두 예약을 해놓아서 어쩔 수 없이 머물러야 했다.

함께하지 못하는 마음이 아파서 우울한 기분으로 승선을 기다리는데

 

"동생분은 어디 갔어요?"

 

"예?  아~우리 딸요?"

 

"동생이 아니구 딸이예요? "

 

그래서 한바탕 웃었다.

옛날 첫발령을 받아 아버지와 함께 근무지로 인사를 갔을 때도

사람들이 아버지를 오빠냐고 물었었다.

그 아버지가 이제 팔순이시고

지금의 딸 나이였던 난 어느덧 그때의 아버지 나이가 되었다.

지금에서야 그때의 아버지 심정이 어땠을까를 짐작해 본다.

좀더 나은 길로 보내고 싶으셨던 아버지 마음도 많이 아프셨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우울한 마음을 털어버릴려고 갑판으로 나갔다.

그런데 검푸른 밤바다는 무섭게 느껴져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해안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또다른 느낌이었다.

12시간 훼리를 타고 간다 했을 때 처음엔 기대를 많이 했었다.

멋진 일몰과 밤하늘의 무수히 쏟아지는 별빛,

아침에 찬란히 떠오르는 태양을 무척 기대했었는데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일본은 일몰시간이 한국 보다 30분 정도 빨라서 이미 해가 진 후에 승선을 하였고

구름이 가득한 하늘에선 가끔씩 한두개의 별들만 보일 뿐 이었다.

아침엔 빗방울이 떨어져 어느쪽이 동쪽인지 구분도 되지 않았다.

오이타항에 내려 일본 최고의 온천 도시인 벳부(別府)로 갔다.

여기저기서 유황가스와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모습이 좀 두렵기도 하고 이채로웠다.

지하 수백미터 아래에서 뜨거운 열탕과 증기가 솟아오르는 모습이 마치 지옥을 연상시킨다해서 붙여진 지옥온천(地獄溫泉)에

도착하여 주변을 둘러보면서도 이곳 사람들은 불안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훼리호를 타고 가는데 저녁 8시가 되니 아카시카이쿄우 다리를 지난다는 방송을 해주었다.

갑판으로 나갔더니 바람에 날라갈 것만 같았다.

자꾸만 몸이 흔들려서 사진도 바드시 찍었다.

아카시카이쿄우는 3911m에 달하는 현수교로 탑의 높이가 해면위 300m라고 한다.

저 밑으로 훼리호가 지나간다.

 

 

 아버지가 찍어주신 첫 사진 

  

 

비상시 소집장소라고 한다. 중판에 있다. 갑판에도 상판, 중판, 하판이 있다는 걸 알았다. 

 

  

 

 

 

아침 식사를 한 식당 풍경

 

 

 

 

 

 

 

 

 

 

 

 

 

 

 

 

 

 

저 바구니에 달걀을 담아 온천물을 이용하여 삶고 있다

 

 

 

  

 

 일본은 가는 곳마다 신사가 있다. 

   

 

 

 

  

  

 

 

 

 

  

 

 

 

 

 

2007.11.04(일)

 

교토의 마지막 여행지 청수사(淸水寺, 기요미즈데라)로 갔다.

청수사로 오르는 좁은 언덕길에는

교토의 기념품과 전통 의상, 공예품등을 파는 작은 상점들과

찻집, 음식점 등의 자그마한 가게들이 줄지어 들어서있다. 

청수사 역시 사람들 물결로 휩쓸려 다녀야 했다.

더구나 친정엄마가 피곤해 하셔서 제대로 돌아보지도 못하고

대충 몇 장의 사진만 담고 내려와야했다.

청수사는 780년에 나라에서 온 승려 엔친(延鎭)이 세웠다고 하는데

여러번의 화재로 소실 되었다가 1633년에 재건 되었다고 한다.

본당의 무대는 10여미터의 절벽위에 139개의 나무기둥을 이용하여 

못 하나 사용하지 않고 세워졌다고 하는데

여기에 서면 교토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봄에는 벚꽃이 가을에는 단풍이 절경 중의 절경이라는데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아 아쉬움이 많았다.


 

 

10만엔인지... 정확한 금액을 잊었는데 얼마를 내고 예약을 하면 게이샤 분장을 해준다고 한다.

 

 청수사로 오르는 언덕길

 

 

선명한 주황빛 건물이 왠지 청수사 이미지하고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풍스런 느낌일거라 생각을 했는데 플라스틱 같은 썰렁함이 분위기에 맞지 않았다.

 

사람들이 하두 많아 서로 잃어버리실까봐 우리 부모님 두손을 꼬옥 잡고 다니셨다

 

 

 

 

 

일본 학생들의 수학여행 뿐 아니라 우리나라 학생들도 수학여행을 왔다.

우리나라도 참 많이 좋아졌다. 

 

밑의 불상 앞의 함에 돈을 넣고 저 줄을 잡아당겨 종(?)을 치며 소원을 빈다.

 

 

 

 

 

139개의 기둥

 

 

첫번째 물을 마시면 건강, 가운데는 지혜, 우측은 재물에 관한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2007.11.04(일)

 

동대사 관람을 마치고

794년~1868년까지 1,000년 이상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로 갔다.

교토의 명소로 알려진 금각사에 도착하니 사람들로 넘쳐난다.

일본의 연휴기간에다 단풍철 관광객과 수학여행 온 학생들까지

가는 곳마다 북새통이다.

연못에 비친 운치있는 금각사의 모습을 관람하기엔

안어울리는 분위기였다.

연못에 비친 금각사의 모습에 반했다는 수도승의 마음을 읽어볼 겨를도 없이

바드시 사진 몇장 찍고 사람들에 떠밀려 한바퀴 휑하니 돌고 나왔다.

물에 비친 금각사의 모습을 여유를 가지고 제대로 음미하지 못한게 못내 아쉬웠다.   

 

금각사(金閣寺, 킨카쿠지)   

1397년부터 10년에 걸쳐 제3대 아시카가 요시미추 쇼군이 세운 누각으로, 그가 죽은 후 유언에 따라 절로 바뀌게 된 것이라 한다. 원래의 金閣寺는 1950년에 정신병을 앓던 수도승에 의해 화재로 소실 되었고, 현재 남아 있는 것은 1955년에 다시 지어진 것이라고 하는데 이 실화를 바탕으로 미시마 유키오가 1956년 '금각사(金閣寺)'란 소설을 썼다고 한다. 소설을 읽었더라면 더욱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을 것 같은데 나중에라도 읽어볼 기회가 있을런지...

누각은 3층 구조로 되어 있는데, 1층은 헤이안 시대의 귀족주의 건축 양식을 따랐고, 2층은 무사들의 취향을 반영 하고 있으며, 3층은 선실(禪室)처럼 비어 있는데 내부는 일반에게 공개 되지 않는다. 긴카쿠지(金閣寺)는 누각이 금박으로 덮여 있어 붙여진 이름 인데 1987년에 금박이 보수 되어 옛날의 아름다움을 되찾게 되었다.  긴카쿠지 주변의 정원에는 중국풍의 문을 거쳐 들어 가게 되어 있는데, 누각 주변의 연못 교코치(鏡湖池)와 정원의 경치가 아름답다.

 

 

나무 밑에는 이끼가 파랗게 잘 자라고 있었다.

자연적인 것인지 인위적으로 관리를 하는 것인지...

 

 

 

 

 

 

 

금각사

 

 

 

 

 

지붕 꼭대기에 봉황 모습

 

 

 

 

 

  

 

 

 

 

 

금각사 입장권

일본사람 취향에 맞게 부적으로 만들어 판매를 했다.

  

점심을 먹고 교토 거리를 잠시 거닐어 보았다

손금을 보아주는 것도 눈에 뜨이고... 

 

고서점도 보이고

 

 

 

 

 

 

 

 

2007.11.04(일)

 

오늘은 우리나라 경주와 비슷한 고도 나라(奈良)에 있는 동대사(東大寺, 도오다이지)로 갔다.

세계 최대의 목조건물인 동대사에는 높이 약 15m, 무게 380톤의 금동좌불상이 모셔져 있는데

얼굴 길이가 5m나 되고 손바닥에는 16명이 올라설 수 있다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속칭 대불(大佛)로 불리는 비로사나불(毘盧舍那佛)이 있다.

동대사는 통일신라의 원효와 의상의 화엄사상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감동하여 지었다고 하는데

동대사를 완공하고 대불 점안식을 할 때 700여명의 통일신라 사절단이 참석하였는데 이것을 놓고

일본과  우리나라의 주장이 서로 다르다고 한다.

지금은 두탑이 사라지고 없지만 불국사와 같은 가람 배치며

많은 곳에서 통일신라의 영향을 받은 게 확실한데 아직도 공개되지 않은 수많은 자료들과

자꾸만 진실을 왜곡하려드는 일본인들의 역사의식으로 동대사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또한 대남문에 걸려있는 '大華嚴寺'란 편액이 2003년도에 사라졌다가 무슨 이유에선지 다시 걸렸으며 

절이름도 중간에 동대사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동대사를 나서며 단순한 관광지가 아님을 생각하게 된다.

 

 

동대사 대남문

 

 사라졌다가 다시 걸린 대남문의 '大華嚴寺' 편액

 

 

 

대불전

 

 

 

대불전 안의 비로사나불(毘盧舍那佛)

 

 

 

 

 

  

 

동대사 모형도

 

청소년 수형자들이 만든 작품이라며 안내판을 보던 딸이 알려준다

 

 

 

 

 

저 기둥 밑의 구멍을 통과하면 행운이 온다고한다.

 

 

 

 

잘못을 저질러 본당에서 쫓겨나 대불전 정면 우측에 앉아있는 빈주루 존자

자기 몸의 아픈 부위와 같은 곳을 만지면 낫는다하여 무릎이 반질반질하다.

 

 

 

 

 

 

  

 

 

 

 

2007.11.03(토)

 

저녁을 먹은 후 부모님을 호텔에 모셔다드리고 딸과 함께 도톰보리와 신사이바시 거리구경에 나섰다.

 

도톰보리는 물자수송을 위한 인공수로였는데 에도시대 이후 카부키극장 및 술집 등이 들어서면서

오사카 최대의 먹자거리로 발전했다고 한다.

그래서 오사카는 먹어서 망하고 교토는 입어서 망한다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오사카의 3대 먹거리로는 타코야끼, 오코노미야끼, 야끼소바가 있다.

또한 먹거리만큼이나 유명한 간판들은 이제 오사카의 상징물로 떠오르고 있다.

도톰보리 입구에 있는 저 빨간 게 간판은 세 곳이 있는데 아버지와 아들들이 각각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청룡 간판은 컵라면을 최초로 개발한 킨류라멘집이다

 

 

군데 군데 대형 빠찡코들도 많았다

 

 

  

 

 

  

오사카에 최초로 등장한 움직이는 간판 북치는 삐에로

오사카인은 먹다가 망한다는 속담을 그대로 가게이름으로 사용한 '쿠이다오레'

별 볼일 없던 가게가 저 움직이는 인형 덕에 도톰보리 최고 명물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일본의 개그맨이라는데 이름은... 

 

  

 

글리코 제과점 간판

도톰보리에서 제일 오래된 간판이라는데 처음엔 육상선수 캐릭터에서 2003년에 오사카 프로야구팀인 한신의 야구선수 캐릭터로 바뀌었다고 한다

 

도톰보리 가와(江) 를 건너면 신사이바시 상가가 나온다

 

신사이바시는 재래식 상점이 모여있어 예로 부터 상인의 거리로 불렸으나 지금은 현대적 모습의 아케이트로 탈바꿈하여 패션 및 유행의 본거지로 변모했다고 한다.

 

 

 

 

 

일본에서의 하루가 지나고 오사카의 아침이 밝아온다.

창문을 활짝 열고 맑은 공기로 환기를 하고 싶은데 창문이 폐쇄되어 열 수가 없다.

일본은 자살율이 높아서 호텔의 모든 창문을 열 수 없도록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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