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11(화)
우리교회에서 고난주간에
교회사적지순례로 인천선교전례지를 다녀왔다.
처음 도착한 곳은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탑이 세워진 곳이다.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에 아펜젤러 목사와 언더우드 목사는 인천을 통해 입국했다.
동방의 한 작은 나라에 공식 파송된 최초의 선교사인 그들의 손에는,
당시 일본에서 한국에 선교사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고
성경을 한글로 번역한 이수정의 한글 성경이 들려 있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백년이 지난 후 이 땅에는 1천만 명 이상의 영혼들이 하나님을 알고 구원받게 됐다.
성공적인 그들의 선교를 기념하기 위해 그들이 처음 이 땅에 발을 디딘 곳에 기념탑을 세운 것이다.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탑 건립의 말>
이 탑은 약 50평의 대지 위에 17m 높이로 세워졌으며,
높이 2.7m의 3인 청동상, 3개의 탑신, 6면의 부조 및 원형의 석조 계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펜젤러 선교사 부부와 언더우드 선교사 3인을 나타낸 청동상 밑에는
아펜젤러 선교사가 제물포항에 내리면서 드렸던 기도문이 새겨져 있다.




The Missionary Review of the World 誌에 실린 이수정(李樹廷)이 일본에서 미국 선교본부에 보낸 편지
예수 그리스도의 종 나 이수정은, 미국의 형제자매들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인사드립니다. 믿음과 진리의 능력으로 나는 주의 놀라운 축복을 받았으며, 나의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조국에서 수많은 백성들이, 아직 참 하나님의 길을 모르고 있으며, 이방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 복음 전래의 시대에, 우리나라는 불행히도 눈에 띄지 않는 지구촌의 한 구석에 위치하고 있어, 그곳에서는 기독교의 축복을 아직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정부는 나라를 개방해 다른 나라와 교류를 하고 있으며, 국민의 여건을 증진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과거보다는) 기독교에 대해 좀 더 완만한 정책을 쓰고 있으며 그러므로 비록 기독교를 공개적으로 허용한 것은 아니지만,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한국에 복음을 전하는 황금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귀국은 기독교 국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비록 나는 별로 영향력이 없는 사람이지만, 선교사들을 돕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이 나의 말에 주의를 기울여 주기를 간구합니다. 만일 나의 요구가 허락된다면 나의 기쁨은 이루 형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종 이수정
1883년 12월 13일
[편집자 주]
병인박해(丙寅迫害 고종 3년, 1866~1873)를 마지막으로 100년간 천주교 핍박이 잠잠해졌다. 이수정은 지금이 개신교 선교사가 들어올 기회라며 파송을 요청한 것이다.
병인박해(丙寅迫害)가 있던 1866년, 토마스 목사는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와서 대동강 강변에서 참수당한 첫 번째 선교사다.
언더우드의 기도문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청청하고 시원하게 자라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은 옮겨와 앉아 있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곳,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질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사람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지도 모르고 묶여 있는 것이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 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질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질 않습니다. 장옷을 쓰고 다니거나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찌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하게 될 일이 어떤 것인지 그 일이 어떻게 나타나게 될는지 조금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에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을 날이 있을 것을 믿을 뿐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저의 믿음이 앞날의 조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洋鬼子)라고 손가락질을 받고 있오나, 저들이 우리의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습니다. 지금은 예배를 드릴 예배당도 없고 가르칠 장소,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박대만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우리는 기념탑 앞에서 이수정의 편지와 언더우드의 기도문을 낭독하며
게으르고 나태한 우리의 믿음생활을 돌아보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길을 생각해 보았다.
이곳에는 유엔 한국참전국 9.28 수복기념 국제마라톤대회 출발점 표지석도 있다.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탑 순례를 마치고 이번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인 인천내리교회를 찾았다.
교회 홈피에 미리 탐방신청을 해야 한다.







내리역사전시관으로 들어갔다
오랜 전통이 있는 교회인 만큼 역사전시관이 잘 만들어져 있었다.

감리교회 계보가 소개되어 있다
감리교회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로부터 애즈베리, 가우처, 매클레이를 거쳐 아펜젤러로 이어지는 한국 감리교회 선교 역사적 계보를 소개하고 있다































1901년 인천 최초의 서구식 자립예배당을 복원한 '제물포웨슬리 예배당'(인천 내리교회 홈피에서 퍼온 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