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빨 강 대 문 집 *

 선운사에서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속에 피어날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선운사 동백꽃

                    용혜원

선운사 뒤편 산비탈에는
소문 난 만큼이나 무성하게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숲을 이루어
셀 수도 없을 만큼 많고 많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가지가지마다 탐스런
열매라도 달린 듯
큼지막하게 피어나는
동백꽃을 바라보면
미칠 듯한 독한 사랑에 흠뻑
취한 것만 같았다

가슴 저린 한이 얼마나 크면
이 환장하도록 화창한 봄날에
피를 머금은 듯
피를 토한 듯이
보기에도 섬뜩하게
검붉게 검붉게 피어나고 있는가

선운사 동백꽃

                        김용택

여자에게 버림받고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 때문에
그까짓 여자 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
다시는 울지 말자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

선운사 동구

                   서정주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것만 상기도 남었읍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읍디다

       

선운사

 

                   송창식

           선운사에 가신적이 있나요 바람불어 설운날에 말이예요    동백꽃을 보신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꽃 말이예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예요    선운사에 가신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예요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예요                                            
 

이제 올해도 한 달이 채 안 남았습니다.

돌아서면 한 달이 가고

또 돌아서보면 일 년이 후딱 지나가고

갈수록 '세월은 유수와 같다' 는 말을 실감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60대 70대는 또 얼마마한 가속도가 더하여 흐를 것인지...

지금 창밖에는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립니다.

실내를 따뜻하게 난방 하고

한장 한장 찍어둔 지난 사진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비가 와서라기 보다

감기에 흠뻑 걸려 할 일들을 모두 내려놓고

누워있는 것도 지루하고 힘들어 컴 앞에 앉아보았습니다.

건강을 주셨는데

몸 관리를 제대로 못하여 병이 나는 것도 죄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잘 관리하며 사용하다가

마지막 가는 날 누군가에게 주고 가야하는데 말입니다.

10월 어느 날

국사봉위로 해가 떠오를 무렵

창문을 열다가 구름이 멋져서 담았던 풍경입니다

평화로운 가을 날 아침을 맞으며

기분이 상쾌했었지요

베란다의 초록이들 물을 주며 바위떡풀도 담아보았습니다

한동안 꽃을 가득 피웠었지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귀엽고 앙증맞은 모습입니다

이사오면서 고생을 많이 시킨 난들

몇개는 살리지 못하고 보내서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내년 봄을 기대해 봅니다

베란다에 난향이 가득할 그 날을

국사봉을 넘어 햇살이 베란다 깊숙히 들어올 때면

작은 책상에 앉아 책을 보기도 합니다

주방에선 효소를 담근 날도 있지요

무우를 나박 썰어

설탕에 재어 효소를 담갔습니다

감기에 좋다는 생강효소도 담갔습니다

엊그제는 감기가 얼마나 독한지

베란다 창고에 있는 효소를 뜨러 나가는 것 조차 힘들어서 마시지 못했는데

사진을 보니 생각이 나서 따듯한 물에 한 잔 타서 마셔보았습니다

아직 달반 밖에 안지났는데 효능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남편 사무실 옆에 감나무가 있는데

감이 어찌나 많이 매달렸는지

바람에 그만 가지가 찢어졌다는군요

덜 익은 감을 가져와서 효소를 담갔습니다

나중엔 익은 감도 한 상자 얻어와서

꽂감을 만들고 있습니다

깍아낸 껍질로는 효소를 담갔구요

꼭지가 없는 감은 썰어서 말리구요

오며가며 집어먹다보니 금새 없어졌지요

감 좋아하기로 소문났으니 남아 날리 있겠어요

얘네들까지 벌써 손을 대기 시작했답니다

창밖의 단풍이 예쁘게 물들었는데

그만 국사봉의 애기단풍을 보러갈 시기를 놓치고 말았네요

다시 일 년을 기다려야겠지요

베란다 건조대에는 시래기를 말리고 있습니다

나물을 좋아해서 말리는 일이 즐겁기만 합니다

반가운 꽃소식도 있습니다

벌써 동백이 피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한송이가 피어나더니

바로 옆에 또 한송이가 나란히 피었어요

얼마나 정열적인지

바라보는 내 가슴이 타오르는 것만 같네요

요리 보고 저리 보아도

어찌 그리 매혹적인지

이제 이 봉오리들이 다 피어 만발하는 날

이웃들을 초청하여 꽃잔치를 하며 함께 즐겨야 겠습니다

기대하세요~

이번엔 소엽풍란 꽃이 피었다.

대엽풍란은 벌써 꽃이 피었다가 졌는데

같이 심은 소엽풍란은 꽃을 안 피워 제대로 대접을 안해줬더니

시샘이라도 하듯 눈부신 하이얀 꽃송이를 피어올렸다.

처음엔 좁쌀만한 게 돋아서

꽃이려니 생각 못하고

이게 무얼까?

궁금해 하며 자주 들여다 보았는데

점점 부풀어 오르더니 꽃의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중 두 송이가 사이좋게 피었다.

그 은은한 향기에

가슴이 맑아지는 듯하다. 

다른 송이는 다 사그라지고

단 두 송이만 남아 사이좋게 크고 있다

얘들에게도 약육강식의 자연법칙이 있는걸까?

드디어 꽃잎이 열리는 순간

나도 숨을 죽이며 가만히 들여다 본다

한 송이가 피었을 뿐인데도

은은한 향기가 퍼진다

활짝 핀 모습

꽃속에 아기천사가 있는 듯

풍란이 일제히 꽃을 피웠다

 조금만 참았다 피었으면 좋았으련만...

꽃이 활짝 피어서

기브스를 풀고 기념촬영

화산석에 붙인 대엽풍란이

드디어 꽃을 피웠다

예쁘게 단장을 하고 시집을 보냈다

또 하나의 작품

수반에 담아 놓으니 좀더 분위기가 나고

얘는 교회로 

잠시 외출 중

봄이 와도

부겐베리아는 다시 오지 않았다.

마른가지들을 잘라내며

무덤덤한 내 표정에 스스로도 이상했다.

너를 바라볼 때마다

다시 이사를 가야 하는데 제를 어찌 해야 하나

슬며시 걱정이 되었었다.

아마도 그런 내 마음을 넌 느꼈던 거야!

순간 왈칵 눈물이 솟구쳤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굵은 두 줄기를 남겨 두었다

헛된 기다림이 되지 않기를

불타오르던 너의 정열을

다시는 볼 수 없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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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두견화

2년전 이랬던 모습이

요만큼 풍성해졌다.

얘는 거실에 들여 놓았더니

3월 초에 이미 다 펴서 졌다.

지난 해

햇빛 좀 넉넉히 받으라고 옥상에 올려놓았더니

쭉 뻗어 오르던 길쭉한 가지 하나가 태풍에 꺽여서

키우려던 모양이 변하고 말았다.

다른 모양을 구상 중... 

베란다에 있는 얘는 이제 피어나기 시작하는데

이사온 후로 황달에 걸린 듯 병색이 돌더니 회복될 줄을 모른다.

그래도 봄마다 꽃은 열심히 피어난다.

그런데 올해는 안하던 짓을 한다.

1층 2층 나누어 피는건지...  

요래야 하는데...

한 층 더 올리고 싶은데

얘가 말을 잘 듣지 않는다

몇 년을 기다렸는데...

한동안

베란다가 화려하겠다

일 년 열두 달

삼백예순닷새를 

하루도 쉬지 않고

꽃을 피워내는 너의 정성에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