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갔다 집에 들어서니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점심을 챙겨주러 온다고.
내가 알아서 챙겨 먹을테니 그럴 필요 없다하니
그럼 저녁에 맛있는 초밥을 사가지고 갈테니
점심은 혼자 먹으라며 전화를 끊는다.
평상시에는 이해심이 많은 건지 너무 무관심한건지 분간이 안돼
내게 관심 좀 갖고 살라며 투정도 부리고 짜증도 냈지만
항상 일이 닥치고나면 남편 밖에 없다는 생각에 고맙고 미안한 마음 뿐이다.
이틀 쉬는 동안에도
시장 봐와서 밥하고
빨래하고
다림질하고
내 일이 다 남편 차지가 되어버렸다.
혼자 바쁘게 일하는 남편에게 미안해서 주방에 얼정거리면
과신하지 말고 가서 쉬라며 주방 근처에는 오지도 못하게 한다.
어제는 날 목욕까지 시켜주었다.
결혼한지 2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남편 앞에 벗겨진 몸이 부끄러워 등을 돌리고 앉았는데 상처부위엔 랩으로 싸매고 온 몸을 깨끗이 닦아주는 남편의 손길이 싫지만은 않았다.
나이 50이 넘으면 서로 미안해하며 등 긁어주며 산다더니 우리가 어느새 그런 나이가 되어 있었다.
전에는 말다툼이라도 하는 날이면 미워서 쳐다보기도 싫었는데
요즘은 별로 다투는 일도 없지만 밉다가도 내가 아니면 누가 그를 이해하고 감싸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며 측은한 마음이 앞서 미워할 수도 없다.
꼭 해야하는 말 외에는 입을 여는 일이 드물고 마음을 잘 표현을 안해서
답답하고 재미도 없고 때론 이리저리 구슬려봐도 다음날이면 도로 그턱인 남자,
성격도 취미도 너무 차이나서 하나 될 수 없을 것 같은 남자,
마누라보다 술이 더 좋은 남자,
아침 출근길에 뽀뽀해달랬다고 미친사람 취급하는 남자,
마누라 생일은 한번도 기억 못하면서 용케도 결혼기념일만은 기억하는 이상한 남자,
딸 낳았다고 밥도 안먹더니 딸 없으면 죽고 못사는 남자,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멋진 남편인 줄 착각하고 살아가는 남자,
두번 말하려하면 "여자가 감히 어딜..."말문을 막아버리는
마누라는 조선시대 여자이길 바라는 남자,
그래도 잠자리에서는 꼭 팔베게를 해주고 넓은 가슴에 폭 안아주는 남자
불쌍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어떻게라도 도와줘야하는 정이 깊은 사람이다.
가끔 그속이 궁금해서 들여다보고 싶어 안달하는 내가 바보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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