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때가 다되어 친구들 모임이 있다며 나간 아들이 12시가 넘었는데 들어오질 않는다.
재수를 한다며 학원 외에는 외출을 안하던 놈이라 은근히 걱정이 되어 문자를 보내니 아파트에 도착했다는 답글이 왔다.
조금 지나서 들어서더니 술 한잔 했다고 한다.
처음 있는 일이어서 심적 갈등이 있는건 아닐까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중학교 때 친한 친구가 유학을 떠나서 친구들 몇이 모여 송별회를 한 모양이다.
그 친구는 성적이 좋았는데 올해 대학 진학에 실패하고 미국으로 떠난다고 한다.
"너도 엄마가 좀 여유가 있어서 유학 보내주면 좋을텐데...'
"누나 보내놓고도 힘들잖아?"
"그럼 일본으로 갈래? 누나랑 같이 있으면 경비도 절약되고..."
아직은 싫은데 일년 열심히 해보고 결과 나오면 그때 생각해 보겠단다.
" 난 돈 많이 벌을거야."
"돈에 너무 집착하면 돈의 노예로 살게 돼."
"집착하는 건 아니고
넓은 서재가 있는 집 하나 짓고 내가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는 정도만...
서울은 땅 값이 비싸서 근교로 나가야겠지?"
평소엔 지 아빠를 닮아 말이 없는 놈이 술 한잔 하고 오더니 옆에 붙어서 묻지도 않는 말을 자분자분 풀어낸다.
남편 같았으면 매번 뻔한 스토리에
"그만 들어가 주무세요."하며 대꾸도 안했으련만
아들놈이 소주 한병에 취해서 다른덴 아무 이상이 없는데 몸이 좀 이상하고 자꾸 말이 해진다니 귀엽기도 하고 속내를 풀어내니 들어도 보고 늦은 밤에 둘이 앉아 도란도란 얘기 꽃이 피었다.
내일 아침엔 아들놈 해장국 끓여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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