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갑자기 그애가 생각났다.
오랜 시간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지금은 불혹을 훌쩍 넘겨 지천명에 가까운 나이지만
내게는 영원히 아이로 남아있을
나에게 맨처음 프로포즈를 했던 그애
내가 그애를 만난 건 첫 발령을 받은 직장에서였다.
그 직장에서 사환으로 일하면서 대입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간혹 모르는 문제를 갖고와서 풀어주기도하고
나를 잘 따라서 동생처럼 따뜻하게 대해 주었었다.
그때는 자취를 했었는데 퇴근 후에는 키타를 들고
저수지 뚝으로 나가 저녁놀을 바라보며
내 생각과는 너무도 다른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를 씻어내기도 했는데
언젠가 부터는 그애가 옆에 와서
지역사회 얘기며 제 얘기들을 들려주었다.
키는 별로 크지 않지만 이목구비가 또렷하여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았던 모양이다.
그들에게 받은 연애편지도 내게 다 보여주었다.
3형제 중에 맡인데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엄마는 막내동생만 데리고 재가를 하셨다 했다
그런 엄마에 대한 미움이 가득했었다.
난 엄마의 입장을 이해한다며 엄마를 용서하고 찾아뵈라며 충고도 했는데
그후로 엄마를 만났다며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어느날은 어떤 분이 날 중매하신다는 얘길 듣고
"그 누나 애인 있어요."그랬다 한다.
"네가 나 애인 있는 걸 어떻게 알아?"
"그냥 k대 다니는 애인 있다고 했어요."
그때는 나역시도 결혼을 생각지 않던 때라서 그냥 웃고 말았었다.
그리고는 얼마의 시간이 지나서 그애는 서울로 간다며 사표를 냈다.
모대학 정외과에 들어가서 외교관이 꿈이라던 아이
그래서 서울로 가서 공부해야겠다며 마지막 날 나를 만나러 왔었다.
그간 고마웠었노라고 그리고는...
"누나! 나 졸업할 때까지만 기다려주세요."
"뭘?"
모른 척 시치미를 뗐다.
"나 누나랑 결혼하고 싶어요!
졸업할 때까지만 기다려주세요."
"야! 누나 소리를 빼던가 결혼이란 말을 말던가...
그리구 너 조금만 더 커봐라 내가 왜 저 누나를 좋아했지? 그럴날 있을테니까..."
그리고 며칠 후면 나도 집 근처로 발령을 받아
그곳을 떠날 예정이었는데 그애에게 얘기를 안했다.
다음날 그애가 내 발령 소식을 들었는지 가던 길을 되돌아와서
왜 떠난다는 얘기를 안했냐며 화를 내며 무척 서운해했다.
서울로 가서는 계속 편지를 보내왔는데
'책을 펴면 책속에 누나 얼굴이 떠올라....'
계속 그리움의 내용들 뿐이었다.
모른 채 답장을 안하다가 안되겠다 싶어
너는 공부하는 학생이고 지금 네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정말 나를 보고 싶다면 네가 성공한 후에 그때 보자는 답장을 보냈었다.
누나의 충고와 위로가 고맙다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나서 보고 싶어 왔노라며 나를 당황스럽게도 했다.
호적이 늦어서 그렇지 실제 나이는 나보다 몇살 적지 않다며 내 앞에서 남자이기를 원했지만
난 한참 아래의 동생으로 밖에는 보이지가 않았다.
TV에서 교육방송을 처음 실시할 때는
TV가 없다고 해서 여름 휴가 때 여행가려고 직장에서 표창 때 상금으로 받은 돈을 저축해 놓았었는데
몽땅 털어서 주기도했다.
나역시도 동생들 대학 등록금때문에 봉급을 타면 부모님께 모두 드리고 용돈을 타서 쓰던 때여서
멋지게 계획했던 그해 여름휴가는 가지 못하고 말았다.
편지도 뜸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날 반쪽이 된 얼굴로 환자가 되어서 나타났다.
살기 싫어서 약을 먹었다고 했다.
세상이 싫다고 했다.
사연을 물으니 바로 밑에 동생이 형 뒷바라지를 하고 있었는데
사고로 기계에 빨려들어가 사망을 했는데
주인은 시체를 유기하고 오히려 동생이 돈을 갖고 도망쳤다며
도둑으로 몰아 부쳤다고 했다.
처음엔 수양아들이라며 무척 잘해주었다는데...
동생을 보내고 삶의 의욕도 잃고 한동안 방황하는 것 같더니
소식이 끊어졌다
그리고는 내가 결혼하던 해 다시 나타났는데
왜 여직 결혼하지 않았냐 묻길레 곧 할거라했더니 믿지 않았다.
누군지 궁금하다고해서 남편과 대면을 시켰더니 그뒤로 또 소식이 끊겼다.
어느해 추석에 친정에 갔다가 역 대합실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첫 직장이 있던 곳의 우체국 여직원이 그애를 무척 좋아했었는데
그녀와 결혼해서 남매를 두었다고 했다.
그녀의 언니가 우리 후배인데 그 언니의 남편도 내가 아는 사람인데 그 소식도 전해주었다.
그 사람도 내게 무척 구애를 했던 사람인데 그사람과 동서지간이 되어서 좀 야릇한 느낌이었던가 보다.
결혼하고도 직장을 다니며 맞벌이 하는 내가 안되보였던지
그렇게 고생할려면 뭐하러 거기로 시집갔느냐며
저한테 왔으면 고생은 안했을 거라고 큰 소리 치는 걸 보니
꽤 괜찮게 사는것 같아 마음이 흡족했다.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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