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3.08(토)

 

오늘은 피아노가 실려나갔다.

현관 밖까지 나가서 엘리베이터문이 닫힐 때까지 바라보았다.

처음엔 아끼던 물건들 하나 둘 내어놓으며

내 몸 한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듯

쓰리고 아파서 견딜 수가 없더니

이젠 눈물도 나지 않는다.

딸애는 외면하고 쳐다보지도 않는다.

차라리 딸애가 들어오기 전에 처분할 것을

어떻게든 가져가려고 미루다가

일이 이렇게 되고말았다.

 

몇번을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피아노를 팔면 어떻겠냐고

일본에 있는 딸에게 전화를 해서 동의를 구했었다.

이사를 해야하는데

네가 집에 없으니 당장은 무용지물이고

자꾸 옮기다보면 망가지니 이참에 팔고

네가 들어오면 그때 더 좋은 것으로 사자고 말했었다.

영문을 모르는 딸애는 깜짝 놀라며 

그냥 두면 안되느냐 몇번을 되묻더니 

마지못해 그러라고 대답을 했었는데

집에 들어와 상황을 알게되고 막상 실려나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많이 아픈가보다.

  

"아주 깨끗하게 쓰셔서 중고로는 최상품인데

 요즘 경기가 안좋아서 000,000원 드릴께요."

 

피아노 뚜껑을 열어보고 여기저기 살피더니

바로 결정을 한다.

 

"지난번 여쭤봤을 땐 피아노를 봐야 알지만

 이모델은 000,000원 정도 한다 하셨는데..."

 

" 2~3년 전엔 그랬죠."

 

"두어달 전에 여쭤본 건데요?"

 

"우리 기사가 잘 모르고 그랬나보네요.

 그럼 00,000원 더 드릴께요"

 

그리고는 바로 지갑에서 돈을 꺼내어 준다.

기사가 아닌 남자사장님이 그러셨다고

더 내놓으라고 말하지 못하고

고맙다며 그 돈을 받아쥐었다.

떼를 쓰면 얼마라도 더 받아낼 수 있었지만

흥정을 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집에 피아노가 들어오던 날

딸애는 껑충껑충 뛰며 얼마나 기뻐했는지

아니 그애보다 내가 더 좋아했을 것이다.

띵동 띵동 띵동동....

집에 들어오면 피아노 앞에 앉아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연습하는 딸애를 보며

참 행복 했었다.

지금도 일본에서 들어와

가끔씩 치는 피아노 소리가 집안에 울릴 때면

내 얼굴엔 행복의 미소가 번졌는데...

 

결혼전에는 매달 월급을 받으면

모두 부모님께 드리고 내 용돈은 타서 썼다.

부모님께서 그러라하신 것도 아닌데

대학 다니는 동생들 등록금이며 빠듯한 살림에

맏딸로서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러다보니 여유가 없는 생활이었는데

마침 이웃에 아이들 과외를 부탁하는 분이 계셔서

퇴근 후에는 아이들을 가르쳤다.

다행히 아이들 성적이 오르고

아이들과도 친해져서 피곤을 견딜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쏠쏠한 부수입에 참고 견딜만했다.

그 돈을 피아노를 사기위해 모았다.

제법 돈이 모아지고 꿈에 부풀었을 때

갑자기 집에 일이 생겨서 많은 돈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서슴없이 그 돈을 몽땅 부모님께 드렸다.

우리 아버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고맙다시며 그돈을 받으시고

나중에 논을 팔아 문제를 다 해결하시고는

더 많은 돈을 얹어 이거면 피아노를 살수 있느냐며 내게 돌려주셨다.

피아노 안사도 되니 안주셔도 된다고 사양 했지만

자꾸 받아넣으라고 주시는 아버지 마음을 아프지않게 해드리려고 받고 말았다.

그 돈을 돌려받고도 난 피아노를 사지 않았다.

그리고 새벽같이 일어나 배우러 다니던 피아노레슨도 그만 두었다.

그후로는 피아노에 대한 미련을 버렸는데

결혼을 하고 딸애가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고서야

그토록 갖고 싶었던 피아노를 장만한 것이었는데

그 피아노가 내곁을 떠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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