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젠 태연한 척 하지 않으셔도 되요.

많이 아프다고

정말 견디기 힘들다고 말씀하셔도 되요.

오히려 저희를 위로하시는 그 말씀에

제 가슴이 더욱 아프게 무너집니다.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신

우리 아버지

그러나 때론 눈물 보이셔도 괜찮아요

아버지!

 

요즘은 아버지와의 추억들을 자주 더듬게 됩니다.

가장 오래된 기억은

분가하지 않고 큰댁에서 함께 살 때

아버지가 오랫만에 오셔서 엄마랑 얘기하던 기억이 있어요

아직 동생이 태어나지 않고 저 혼자였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렇담 두세살인데

기억이 가능한 건지 저두 놀라워요

 

너댓살 적 기억 하나

동생이 침을 많이 흘렸는데

개구리가 좋다는 얘기를 듣고

앞산 옹달샘 근처 풀숲에서 개구리를 잡아

연탄불에 구어 설탕을 찍어 주시면 동생하고 둘이서

넙죽넙죽 받아 먹었던 일

그때 참 맛있었다는 기억이 있어요

 

입곱살 때

매일 붙어다니던 한살 위인 사촌언니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자

나도 학교 보내달라고 울고불고 떼를 쓰는 나를 안아서 우편함을 보이시며

저기에 통지서가 와야 학교를 갈 수 있다고 달래시던 일

 

야단 맞은 기억도 있어요

동생하고 둘이 앉혀놓고 성냥개비로 덧셈뺄셈을  가르쳐주셨는데

두살 아래인 동생보다 항상 뒤쳐져서 야단 맞아서

동생하고 같이 배우는게 싫었던 기억 있어요

 

까망장화 사다주셨는데

남자거라며 안신으려다가 혼이나서

비오는날 울고 학교에 갔던 일

 

외가집에서 살 때

자전거를 타고 저를 데리러 오셨는데

이제 집에 가니 제 물건을 챙기라 하셨는데

그런 걸 뭐하러 가져가냐 하실 까봐

조개껍질과 소라, 사금파리 등 소꿉놀이 도구를 챙기지 못해서 아쉬웠던 일

자전거 뒤에 앉아 떨어진다며 아버지 허리를 꼭 잡으라시던 일

다시 한번 그 때로 돌아가 아버지 허리를 꼭 잡고 자전거를 타보고 싶어요

 

이엉을 다시 해놓은 초가지붕에 불이나서

당황해 하시며 불을 끄던 모습도 기억나구요

 

처음으로 중국집에서 외식하던 날이었나봐요

잠자는 저를 깨워서 데리고 가셨는데

말랑말랑하게 부드러운 하얀 것으로 기억되는데

지금 생각하니 물만두였을 거란 생각이드는데

참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나요

 

중고등학교 시절엔 딱히 기억나는 게 별로 없어요

아!

엄마가 많이 아파서

아버지하고 같이 밥하던 기억이 있어요

그때 잘하던 계란찜...

 

첫 직장에 발령 받아 가던날

저를 데려다 주셨는데

모두들 아버지를 오빠냐구 물었어요

그토록 젊음을 오래도록 간직하셨는데...

 

혼자 독립하려고

대전으로 직장을 옮기려다 아버지에게 발각되어

그토록 중대한 일을 어찌 혼자만의 생각으로 처리하려했냐며

엄청 서운해하시며 크게 호통치시던 일

 

숨이 멎고

새파랗게 죽어가던

다 큰 딸년 죽이는 줄 알고

눈물 흘리시며 입으로 인공호흡하셔서 살려내신 우리 아버지

병원 가는 차안에서 제손을 꼬옥 잡아주시던 그 따뜻한 손길을

이젠 제가 잡아드려야 하는군요

아버지

 

제발 우리 아버지

고통없이 한 십년만

아니 오년만이라도 더 살게 해달라고

간절히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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